고전 명작 라쇼몽과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리고 J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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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8, 2025
Moon

사건에 깊이 들어가 볼수록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때가 있다.

천동설의 세계를 밀어낸 지동설. 만유인력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의 미시 세계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새로운 접근, 새로운 해석, 새로운 발견을 통해 더욱 많은 것을 이해하며 발전 해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본질적 진실을 찾기 위해 얼마나 엄청난 노력과 수고가 있었을까? 때로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고 포기 직전까지 가기를 수도 없이 했을 것이다.

우리의 뇌는 항상 에너지를 절약하고 싶어 한다. 깊은 사유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싶어 한다. 이를 뇌의 인지적 구두쇠 경향이라고 한다. 생명 유지를 위해 최우선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 일, 자신의 삶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적당히 마음 가는 대로, 대다수가 생각하는 방식 그대로를 자신의 생각으로 흡수하는 것을 선호하지, 굳이 그 이면을 깊이 파고들어서 진실을 찾는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모든 미디어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고 사법적 판단마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오직 그 방향만이 완벽한 사실이라는 확신을 갖기는 너무 쉽다. 그리고 한번 형성된 사고관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고전 명작 라쇼몽과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공부하면서 진실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함께 해보고자 한다.

고전 명작 라쇼몽의 교훈

고전 영화 『라쇼몽(羅生門) 』은 ‘진실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모두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는 통찰을 시대를 초월하는 독특한 서사 구조로 담아낸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꼽힌다. 

숲속에서 벌어진 한 사무라이의 죽음과 그의 아내에 대한 성폭행 사건을 두고, 강도, 아내, 심지어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까지 각기 다른 진술을 쏟아낸다. 그들의 이야기는 서로 모순되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진심에서 우러나온 '진실'이다.

결국 영화는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주지 않는다. 이는 하나의 사건에도 여러 개의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자의 기억과 이기심, 자존심이 뒤섞여 누구도 진실의 전체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쇼몽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교훈은 때로는 사건이 너무 복잡해서 하나의 단면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자의 주장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진실의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조차 눈으로 본 것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진실이 규명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중심적 관점 때문에 진실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 전설적인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Roger Ebert)

피카소의 입체주의

피카소의 그림은 독특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

아름다운 한 여인. 그녀를 그림 속에 담는다는 것은 그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 그 하나일까? 피카소의 『입체주의(Cubism) 』는 이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이었다. 입체주의는 한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본 모습을 하나의 화폭에 모두 담아내는 방식이다. 옆모습과 정면, 그리고 뒷모습까지 하나의 평면에 뒤섞어 보여줌으로써 대상의 본질적인 형태와 실체를 표현하고자 했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녀가 살아온 삶의 과정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있는 그대로를 표현한다는 것은, 그 말과는 다르게 매우 입체적인 해석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라쇼몽과 입체주의, 그리고 JMS

정명석 선생님과 JMS에 관해 대중이 접한 모든 정보들은 이미 누군가가 일면의 해석을 해서 제공한 것들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거짓이 아닌 진실에 대한 공론화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미디어 생산자들은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 충분한 입체적 해석을 완료한 상태였을까? 라쇼몽의 교훈을 기억해보자. 그들은 오직 하나의 결론만이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그 결론에 부합해 보이는 방식으로의 해석만을 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인간이기에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뇌의 인지 편향성도 극복해야 하고, 우리 사회 깊이 뿌리내린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편견과 권위주의도 극복해야 하며, 상업성을 중심한 언론의 구조적 문제도 극복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들의 역기능에 대해서 성토해왔지 않는가? 오늘날 언론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심지어 한국의 사법시스템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과연 누구에나 소개해주고 싶은 평판 좋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여길 만한가?

사회심리학과 인지심리학에서의 세뇌의 개념

억울하다는 JMS의 주장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반박하는 대부분의 주장의 뿌리에는 '세뇌'라는 단어가 있다.

"그렇게 권위적이어야만 할 것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부와 명예에 취해 살면서 사람들을 착취하거나 성적 노리개로 삼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냐? 세상에 그런 존경 받아 마땅한 존재가 있을 수가 있냐? 그저 너희는 모두 세뇌당해서 속고 있는 것이다." 라는 형식의 주장들이다.

세뇌의 개념 자체가 실제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도 있지만 이부분은 논외로 하고 사회심리학과 인지심리학에서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세뇌에는 다음과 같은 필수 요소가 있다.

  • 강압적 환경: 자유로운 사고와 판단을 제한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
  • 고립: 외부의 지지나 대안적 정보 없이 조작하려는 대상에게 전적인 의존 상태 형성
  • 신념 체계 파괴: 새로운 신념을 주입하기 전에 기존의 정신적 기반 파괴
  • 반복 주입: 파괴된 틈을 이용해 새로운 가치관과 신념을 반복 주입을 통한 내면

그리고 이 요소들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반문이 가능하다.

  • JMS 탈퇴자들이 얘기하는 세뇌의 과정은 과연 위의 요소에 부합하는가? 
  • 실제 이런 과정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 
  • 이 과정은 모든 JMS 회원들의 공통적인 경험인가?

만약 위의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JMS회원의 말이 옳다.’라고 생각해 줄 수는 없을지언정 적어도 ‘세뇌 당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라는 정도로는 인정해줘야 옳은 것이 아닐까?

세뇌, 사이비 연상작용

정명석 선생님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보여주신 것들이 우리를 세뇌시키는 과정이라고 해석한다면, 성경을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모든 교파에서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모든 것도 세뇌고,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모든 행위도 세뇌라고 봐야한다. 

정명석 선생님께 우리가 배운 것은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것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마음속으로조차 미워하거나 음욕을 품지 않기 위해 사회 규범 그 이상의 실천을 목표로 했다. 그저 기성 교단과 교리적 해석이 다르고, 그에 따라 다른 형태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리적 이단으로 몰린 것 뿐이다.

교리적 이단이 법률적 기준에서 범법 단체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 않는가? 그럼에도 이단이라는 프레임은 대중들에게 영화나 소설에서 간접경험했던 사이비 단체들의 극악한 이미지와 연결된 '연상작용(Association)'을 일으키기 쉬웠을 것이다.  

구교와 신교가 구원의 본질이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결국 화해했듯이 우리도 기성 교단과 구원의 본질이 결코 다르지 않다. 다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구름 타고 2천 년 전 나사렛에서의 모습 그대로 육신으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믿던 자들의 죽은 육신 조차도 다시 살아날 것을 소망하고, JMS는 예수님께서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육신이 아니라 부활하신 영으로 다시 오실 것을 믿고 따를 뿐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 요한복음 6장 63절

모든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다는 것은 완벽히 동일하다. 그리고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다양한 신념 체계를 공유하면서 형성된 단체들이 있지 않는가? 우리도 하나의 신념 체계에 대해 충분히 동의했기에 함께 이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비록 대중의 평가는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지만 우리는 분명히 이곳에서 확실한 가치를 발견했다. 

JMS 회원들이 사회 규범을 벗어난 행동을 강요받더라도 전혀 자각하지 못할 정도의 세뇌 상태라고 믿는 대중적 인식에 대해서 이제는 의문을 좀 가져봐도 되지 않을까?

과연 대중들은 미디어의 반복적이고 강압적으로 까지 느껴지는 알고리즘의 편향된 정보 제공에 세뇌 당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JMS 구성원으로서 공적 자원을 사용하는 만큼 교회에 딱 십일조만 하고 즐겁게 직장 생활하고 남는 시간에 재밌게 놀러도 다니고 이것 저것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잘 살고 있다. 나는 세뇌 당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