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밀러의 희곡 『시련(The Crucible)』은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마녀 재판 사건을 배경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 사건은 뉴잉글랜드 청교도 사회에서 발생한 집단적인 종교 탄압으로, 1692년 5월부터 10월까지 25명이 ‘마녀술(Witchcraft)’이라는 죄목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주었지만, 동시에 매우 중요한 법적, 사회적 교훈을 남기며 미국 사법 시스템의 초석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시대를 초월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위대한 작품 ‘시련’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살아있다는 것은 명예로운 이름을 지키는 것
남자 주인공인 존 프록터를 중심으로 한 서사는 다음과 같다.
17세 소녀 아비게일과 불륜 관계였었던 존 프록터. 아비게일은 존 프록터의 아내인 엘리자베스를 저주하여 죽이기 위해 청교도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주술까지 사용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마을은 마녀 찾기에 나서게 되고 아비게일은 마녀가 누구인지 지목하는 신성한 소녀로 인정받게 된다. 드디어 모든 공권력을 동원하고 공식적인 재판을 통해 엘리자베스를 마녀로 지목해서 죽이고 존 프록터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비게일의 주술이 이뤄지는 것이었을까?
아비게일과의 불륜관계로 늘 양심에 가책을 느끼던 존 프록터는 임신한 아내 엘리자베스를 지키기 위해 아비게일과의 불륜사실을 고백한다. 아비게일이 벌이는 모든 마녀 소동의 진짜 동기가 신앙심이 아니라, 자신과의 불륜 관계에서 비롯된 질투심과 엘리자베스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복수심임을 밝히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는 없었다.
존 프록터는 비록 살아남기 위해 자신도 마녀술을 행했다고 거짓으로 자백하기는 했으나 이내 마음 다 잡고 자백문을 찢어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며 고백한다.
"Because it is my name! Because I cannot have another in my life!"
"이건 내 이름이니까! 내 인생에 다른 이름은 가질 수 없으니까!"
마녀는 정말 없었을까?
아서 밀러가 ‘시련’을 집필한 동기를 에세이에서 밝혔다. 그는 미국의 정치 탄압으로 불리는 매카시즘(McCarthyism) 광풍의 핵심 기관이었던 "비미국적 활동 조사위원회(HUAC)"에 소환되기도 하며 큰 고통을 겪었다. 세일럼의 무고한 사람들이 마녀로 지목되었듯 그 역시 공식적으로 공산주의자로 지목 당했던 것이다.
매카시즘은 1950년대 초 미국에서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하여, 명확한 근거 없이 개인을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사회적으로 매장시킨 극단적인 반공주의 활동이다. 아서 밀러는 이런 매카시즘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기 위해 『시련(The Crucible)』을 집필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도 현실 세계에서도 마녀로 지목된 사람들은 당연히 마녀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기심, 탐욕, 시기심, 복수심에 가득차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로 지목한 사람들이 마녀이고 악마가 아니었을까? 아서 밀러도 이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