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S 역사속 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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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3, 2025
Moon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천재 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남긴 유일한 소설 『폭풍의 언덕』은 『리어 왕』,『모비 딕』과 더불어 영문학의 3대 비극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복잡한 인물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인간 본성의 어둡고 모순된 면모를 강렬하고 깊이 있게 보여준다. 비록 출간 초기에는 난해하고 불쾌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이후 이 소설만의 독특한 서술 방식과 심오한 인간 심리 탐구가 재평가받으면서 고전 문학의 걸작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정명석 선생님과 JMS 그리고 사람들사이의 간극

정명석 선생님과 JMS에 연결된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도 이와 같이 복잡한 인간 감정과 갈등으로 인해 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 사건들의 진실을 단 몇 문장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JMS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JMS가 가진 문화와 질서, 그리고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제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JMS가 기본적인 사회 통념과 어긋나는 규범을 가진 것은 절대 아니다. 인간은 때로는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있지 않은가?

악의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처음 접하는 세상을 해석할 때 그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자신과 자신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해석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판단할 수 없다. 볼에 키스하는 인사법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고 친밀함의 표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 될 수 있듯이 말이다. 인사 방법은 달라도 반가움을 전하는 본질은 동일하다. 이런 간극에 대한 이해 없이 나와 다른 누군가, 내가 깊이 경험해보지 않았던 단체나 문화권에 대해서 올바른 해석은 불가능하다.

거짓말도 천 번 하면 진실이 된다.

오히려 섣불리 충분히 이해했다고 착각하며 자신만의 해석을 하는 순간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끝없는 오해가 시작된다. 이런 오해의 말들은 자극적이기까지 해서 순식간에 천리만리 퍼져나가고, 그 말을 전해 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각자의 상상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직접 본적도 없고 편향적 상상까지 더해진 추측성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는 마치 두 눈으로 직접 보고서 하는 말이 되어 있다. 그래서 거짓말은 전해지면 전해질수록 강한 진실로 변해간다.

그야말로 할루시네이션으로 가득한 가상의 세계를 철석같이 믿고 사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담백한 맛의 일상적 진실 이야기보다는 자극적이고 호기심을 주는 상상 속 이야기를 더 좋아하고, 오히려 그런 내용에 한 번 노출되면 매우 쉽고 단순하게 명백한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폭풍의 언덕』의 비극적인 두 주인공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했던 것은 히스클리프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캐서린의 충격적인 단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사랑했던 마음이 변하는 순간
"힌들리가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나는 에드거와 결혼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꿈에도 안 했을 거야. 하지만 만약 내가 히스클리프와 결혼을 하면 내 격이 떨어지는 거야."

캐서린과 그녀의 하녀 넬리 딘과의 대화를 엿듣게 된 히스클리프. 그는 캐서린의 이 말을 듣고 큰 충격과 배신감에 떠나버리고 평생을 그녀와 그녀의 가문에게 복수하며 살게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캐서린의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넬리, 나는 내가 히스클리프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나는 히스클리프 그 자체야!"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이 고백을 듣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만약 그가 캐서린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면 어땠을까? 떠나기 전에 한 번만 더 캐서린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둘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사랑이 컸던 만큼 오해의 충격도 컸겠지만, 서로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면, 그녀의 진심을 그런 방식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야 한다. 앞뒤의 맥락도 모르는 상태로 대화의 일부분만 듣고 지금까지 히스클리프 스스로 직접 경험해왔던 캐서린의 진심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고 배신감이라는 감정이 앞서서 떠나가버리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JMS에도 그런 일들이 많았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간 자신이 직접 확인하고 경험하고 행복해했던 순간들이, JMS를 떠나버리면 어떻게 모조리 지옥 같은 기억, 끔찍했던 일들로 뒤바뀔 수가 있는 것일까? 그저 그동안 ‘속았다’라고 말하면 그 이유가 설명이 되는 걸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서로 사랑했던 시간들이 과연 거짓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이 히스클리프를, 또 그들을 복수의 화신, 증오의 화신으로 만들었을까?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을 행복했었다고 인정한다면 지금의 모든 미움과 복수심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부인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다만, 정말 안타깝고 늘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은 JMS에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떠난 그들 때문이다. 그들이 좋을 때는 밤이 늦도록 희생하고 봉사하게 했으면서, 그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관심 가져주고 도와주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너무 크다.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강한 신념 때문에 사람들을 강압적인 태도로 대하면서도 그런 자세가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권위를 내세우며 책망만 하던 일부 사람들. 정명석 선생님께 배운 것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사람들을 절대 혼내지 말고 사랑하고 이해해주면서 잘 이끌어주라고 그렇게도 자주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그런 부끄러운 모습들이었다. 그런 일들로 JMS에서 상처받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정명석 선생님을 통해 배운 하나의 철칙

정명석 선생님에게 배운 철칙이 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듣게 된 누군가의 대화 내용이 아무리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라도 나에게 필요해서 직접 전달해준 이야기가 아니라면 나는 그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고 그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는다. 혹시나 누군가 실수로 내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준다면 나는 그 이야기도 못 들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 이야기가 나의 행동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도록 노력한다.

특히, 누군가에 대한 안 좋은 평가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히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인식에 솜털만큼의 영향도 주지 않도록 노력한다. 한 사람의 평가에 대해서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또한 말이라는 것이 전달되면서 어떻게 왜곡되는지 정명석 선생님과 JMS에 대한 미디어와 세상의 평가를 접하면서 처절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제발 JMS 회원들도 이것만은 명심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이 아니라 상처를 주고 우리를 떠나게 만들었는지 정말 심각하게 되돌아보고 나를 포함해 모두 같이 회개했으면 한다. 우리를 오해하면서 비방하는 사람들을 과연 우리는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내 눈에 보이는 한 사람의 어떤 말이나 행동 또는 몇 가지 사건들만 보고서 나의 인식관 중심으로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경솔하고 오만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 그것은 한 사람이 살아온 세상의 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그 주변에 연결된 맥락과 서사들이 실타래 보다 더 촘촘히 엮여 있는데,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도 못한 타인이 그렇게 단순히 풀어나가서는 절대 안 된다.

말해주고 싶어도 다 말해줄 수 없는 감춰진 사연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봤는가?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하물며 타인에 대한 해석을 그렇게 경솔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한 인물과 그의 삶에 대해서 책을 쓰거나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연구하고 분석하고 그의 삶을 추적하면서 때로는 그 사람 자체가 되어서 깊이 있게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그런 과정을 통해 완성된 걸작품에도 많은 이견이 존재하는 것이 사람과 삶에 대한 해석이다. 

고흐의 귀를 누가 잘랐는지 우리는 아직도 알지 못하며, 단두대에서 처형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구매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JMS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들

정명석 선생님은 평생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가르치고 대화하셨을까? JMS 역사가 40년이 넘었는데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갔을까? 정명석 선생님은 기도하고 성경 가르쳐주시고 절대 하나님과 예수님을 중심하며 사랑하고 살라고 가르치시는 것이 존재의 목적 그 자체인 분이신데, 때로는 사람들이 선을 넘는 것들을 기대하기도 했었다.

단체를 운영하다 보니 행정적으로 특정 직책을 맡게 되는 사람도 있고, 그중에는 남들보다 훨씬 더 정명석 선생님 가까이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남들보다 눈에 띄고 싶은 공명심에 사는 자들, 사람들 속에서 개인적 성공의 기회를 찾는 자들, 학교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어린 학생들의 설레임처럼 정명석 선생님께 특별히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심지어 이성적 사랑의 대상으로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수십 년간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가르치는 것은 하나인데, 그것을 배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부족한 우리들 때문에 정명석 선생님을 정말 많이 난처하게 만들었다. 비록 극히 일부의 일이었을지라도 대중들이 선생님과 JMS를 절대적인 악으로 판단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비정상인 방식으로 선생님을 대하는 모습들은 JMS 회원들의 평균 눈높이에도 비정상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나체로 찍은 영상이나 복수심에 불탄 폭력 사건. JMS 회원 모두가 세뇌를 당해서 그런 행동들조차 정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행위이고 중범죄다. 에로스의 육체적 사랑이 아니라 영적 아가페 사랑을 해야한다고 배우고 원수도 사랑하고 기도해주라고 배우는 곳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었다. 선생님께서 그리하라고 시킨 적이 전혀 없는 일인데 감히 상상도 못 할 일들을 해놓고는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 받으려고 했던 끔찍한 행동들. 이런 것들을 아무런 맥락에 대한 설명도 없이 온 세상에 다 보여주게 되었으니 정말 세상이 경악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그것을 보고 경악했다. 대충격이었다. 이것을 도대체 무슨 수로 해명할 것이며, 해명을 한다 한들 과연 몇 명이 믿어주고 이해해줄 수 있을까?

그는 착취하는 자가 아니라 착취당하는 자였다.

정명석 선생님 곁에는 '왜 날 좀 더 신경 써주지 않나?' 하며 서운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눈에 보이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도 그 사람에게만 감사하면 안 된다.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께 더 감사하고 사랑해드려라. 나 선생이 말씀을 가르쳐 준다고 눈에 보이는 선생만 중심하고 가까이하는 것도 죄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문제가 생기고 급한 일이 생기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부탁하기 좋고, 당장 내 무거운 짐을 나눈 것 같아서 마음이 금방 편해지는 것을… 이런 생각들이 전부 문제였다. 우리가 해야 할 기도와 실천조차도 선생님께 다 맡겨버리고 의지했다. 사랑 많고 정이 많은 선생님은 간절히 부탁하면 외면하지도 못하고 이것저것 다 들어주시니 몸이 남아나질 않으셨다.

하나라도 가진 것이 있으면 우리에게 나눠주시는 것이 일상이셨는데, 더할 수 없이 해주셨어도 각 개인의 욕심만큼 다 못해주신 일도 생기지 않았겠는가?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할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한 명, 한 명 관심을 가지고 직접 만나는 시간을 내어주셨는데, 우리의 이기심과 자기중심적 생각 때문에 선생님을 불편하게 만들고 세상이 온통 선생님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교회를 다니면서 왜 그렇게 사람을 중심하고 떠받드냐고 말한다면 관점의 차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만큼 나에게 잘해주시고 신경을 써주시고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기가 막히게 잘 가르쳐주시니 나도 그분을 좋아하고 가까이하고 싶은 것이다. 여러분 곁에도 진짜 친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을 중심으로 청중이 모이는 곳이 이곳 뿐이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 행복과 배움을 위해 그리한다.

그가 우리의 가진 것을 빼앗고 몸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그가 오히려 욕심 많고 시기 질투 많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착취당하셨다. 그의 젊음과 건강을 우리에게 너무 많이 빼앗기셨다. 어쩌면 그런 희생이 결국 자신을 가두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셨을지도 모르겠다. 총회장 목사의 타이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가까이하다 보면 얼마든지 오해하게 만들 수 있는 장면들이 연출되니까. 누군가에게는 그런 장면들이 좋은 먹잇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심을 이해한다는 것

오해로 인해 사랑이 복수심이 되었을 때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서로의 진심을 이해한다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하듯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신이시지만 우리가 진심의 기도로 그 마음을 하나님께 전할 때 비로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의미가 생기는 것이고, 우리 역시 하나님의 외적 형상이 아닌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란 존재도 비로소 의미가 있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모두의 구원을 위함임과 동시에 오직 나를 위한 십자가였음을 이해할 때 비로소 예수님은 나에게 메시아,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다.

정명석 선생님은 나에게 그것을 직접 삶으로 보여주셨다. 그의 모든 시간을 단 한 사람에게 쏟아부어줄 수는 없지만, 그의 삶과 사랑이 얼마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향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그는 JMS라고 흔히들 부르는 기독교복음선교회라는 교단을 하나의 단체로만 대한 것이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시간을 바쳐 개개인의 시간 속에 들어가서 직접 눈을 마주치려고 했다. 바로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들어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참 고맙고 좋았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셔서 비로소 내가 성경 속의 예수님을 진심으로 내 삶 속에 가까이할 수 있었다. 정명석 선생님은 나에게 예수님을 잘 가르쳐주고, 나를 예수님께 잘 인도해주는 선생님이고 길이었다. 그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으로 끝이 났을 것이다.

정말 그가 나에게 바란 것도, 내가 그에게 바란 것도 그것 뿐이었다.

모두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바로 당신 만큼은 그와 나의 진심을 이해해주기를 바래본다.